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④ 혜성처럼 나타난 총리 김재룡

이대근
2019-10-21
조회수 487

북한은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깜짝 인사를 했다. 남쪽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인사, 북쪽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인물을 새 내각 총리로 선출한 것이다.

김재룡. 외부에 알려진 그의 경력은 간단하다. 2010년 평안북도당 위원회 비서에 이어 2015년부터 총리 선출 직전까지 자강도당 책임 비서(현 도당 위원장)를 맡아 왔다는 것이 전부이다.

이제 겨우 서른 살을 넘긴 김여정은 어떻게 이런 권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는 누구인가?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를 연재하며

앞으로 인물이라는 창을 통해 북한 정치를 이해하는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호에는 네번째로 올해(2019년) 4월 북한 정치에 혜성처럼 나타난 북한 내각 총리 “김재룡"을 다룬다. 이를 통해 북한의 경제와 개혁의 앞날을 전망해 본다. 앞으로 이어질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 1부의 집필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북핵 협상 대표 김영철
  2. 김정은 시대의 2인자 최룡해
  3. 김정은의 최측근이자 백두혈통 김여정
  4. 혜성처럼 나타난 총리 김재룡
  5. 뚝심 있는 외무상 리용호
  6. 막후의 실력자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용원


***


인물로 보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 정치 ④ 
혜성처럼 나타난 총리 김재룡

글쓴이_이대근 경향신문 논설고문


김재룡은 누구인가?

북한은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깜짝 인사를 했다. 남쪽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인사, 북쪽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인물을 새 내각 총리로 선출한 것이다. 김재룡. 외부에 알려진 그의 경력은 간단하다. 2010년 평안북도당 위원회 비서에 이어 2015년부터 총리 선출 직전까지 자강도당 책임 비서(현 도당 위원장)를 맡아 왔다는 것이 전부이다.


<사진 설명> 2019년 4월 1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 김재룡이 김정은, 최룡해, 박봉주에 이어 네번째로 입장하고 있다._조선중앙통신


자강도는 군수공장이 밀접한 지역이자 90%가 산지일 만큼 북한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농사짓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연형묵이 도당 책임 비서로 재직할 때 상당한 성과를 낸 바 있다. ‘두 벌 농사(이모작),’ ‘세 벌 농사(삼모작)’는 물론 중소형 발전소 건설로 생산량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김정일이 이 업적을 기려 도당 소재지 강계 이름을 따 ‘강계 정신’1)으로 명명하고, 전국이 강계 정신을 따라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자강도는 자력갱생의 상징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도당 책임 비서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충신’의 이미지를 갖고 중앙 무대로 진출하고는 했다. 하지만 김재룡이 자강도당 책임 비서로 있을 때는 당연히 고난의 행군 시절이 아니며, 그가 그곳에서 특별한 업적을 남겼다는 기록도 없다. 그의 나이도 외부 세계에 알려진 바 없다. 50~60대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이렇게 중앙에 진출해 본 경험이 없는 지방 당 관료 출신을 총리로 발탁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자 남쪽 전문가들은 두 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하나는 박봉주 역할론이다. 그가 내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봉주가 80세 고령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되 경륜이 부족한 김재룡의 배후에서 내각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박봉주는 총리직에서 해임됐음에도 불구하고 총리 재직 시의 당·국가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만만한 김재룡을 지도하며 경제문제를 계속 통제할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다른 관측은 대북 제재 속에서 자력갱생의 기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과연 김재룡은 박봉주의 지도를 받아, 혹은 스스로 최악의 대북 제재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까? 그가 이끄는 내각은 필요한 자원과 힘을 최대한 동원해 자력갱생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까?



‘정부 대표’(총리) 위에 ‘국가 대표,’ ‘국가 대표’ 위에 ‘국가 대표 최고 영도자’

북한 헌법은 내각을 ‘국가주권의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전반적 국가 관리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각은 국가주권 기관이 아니라, ‘행정적 집행기관’ 즉, 실무 기관이라는 의미다. 국가주권 기관은 입법부이기도 한 최고인민회의를 말한다. 헌법상 국가기관 가운데 최상위에는 최고인민회의가 있고, 그 다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령도자인 국무위원회 위원장, 국가주권의 최고 정책적 지도 기관인 국무위원회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최고 주권 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있다, 그 다음 맨 마지막에 있는 것이 내각이다. 내각은 국가기관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한다. 말하자면, 내각은 최고인민회의, 국무위원장,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헌법상 내각의 임무와 권한 1항도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로 되어 있다. 국가 정책 결정이 아니라, 집행 대책 마련이 핵심 역할이다.


<사진 설명>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국무위원들. 김정은을 기준으로 오른쪽 첫번째가 박봉주, 왼쪽 두번째가 김재룡이다._출처 노동신문


내각은 총리, 부총리와, 남한의 장관에 해당하는 위원장 및 상(相)을 두도록 되어 있다. 남한의 장관은 국무회의 일원으로, 국가 최고 정책심의기관인 국무회의에 참석, 심의 안건 의결에 참여한다. 그러나 북한의 내각은 그런 권위가 없다. 국무회의와 유사한 내각 전원회의가 있지만, ‘행정 경제 사업에서 나서는 새롭고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북한 헌법 127조)’하는 권한만 있다. 국가의 중요 정책을 토의 결정하는 권한은 국무위원회에 속한다. 그럼에도 내각 총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대표한다(북한 헌법 125조)고 되어 있다. 이 표현만 생각하면 ‘정부 대표’라는 높은 위상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위에 ‘국가 대표’가 따로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상임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 바로 최룡해가 그 자리에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국가 대표’ 위에 또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령도자’가 따로 있다. 바로 김정은이다. 말하자면, 내각이 전반적 국가관리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총리는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영도자’ → ‘국가 대표’ → ‘정부 대표’라는 서열상 최하위에 위치해 있다.


낮은 서열의 내각이지만 해야 할 일, 즉 ‘임무와 권한’은 상당히 많다. 그 일부만 소개한다.


  • 국가의 인민 경제 발전 계획을 작성하며 그 실행 대책을 세운다.
  • 국가 예산을 편성하며 그 집행 대책을 세운다.
  • 공업, 농업, 건설, 운수, 체신, 상업, 무역, 국토 관리, 도시 경영, 교육, 과학, 문화, 보건, 체육, 로동 행정, 환경보호, 관광 그 밖의 여러 부문의 사업을 조직 집행한다.
  • 화폐와 은행 제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
  • 국가 관리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검열, 통제 사업을 한다.


총리가 통할하는 부서도 상당히 많다. 위원회 및 성이라는 이름이 붙는 부서가 보통 40여 개 에 이른다. 현재는 부서가 48개나 된다. 위원회 및 성은 크게 기능 부서, 부문별 부서로 구분할 수 있다. 기능 부서로는 국가계획위원회, 국가가격위원회, 국가품질감독위원회, 재정성, 중앙통계국, 중앙은행이 있다. 모두 경제 기능에 해당한다. 부문별 부서도 상당수가 산업별 부서이다. 북한에서 흔히 내각을 경제 사령부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표> 북한 내각의 부처 조직 분류. 출처: 박영자·이교덕·한기범·윤철기 공저. 2018.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국가기구와 국가성』. 통일연구원, KINU 연구총서 18-22. 98.


경제사령부라는 호칭이 말해 주듯이 총리가 비경제 부서까지 포함된 48개 부서를 모두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경제 부서인 외무성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이다. 외무성, 조평통 같은 외교 안보 부서는 당 차원에서 다뤄야 할 중대 의제를 담당한다. 그런 의제는 총리 역할 범위 밖이다. 두 부서는 김정은에게 직접 제의서를 올릴 수 있는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박영자 2018, 98).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다른 부서 간부는 꿈도 꿀 수 없는 자리다. 외무성, 조평동은 내각 안에 있지만, 내각을 뛰어 넘는 위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민무력성,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은 이미 오래전 내각 산하에서 벗어나 내각 상위 기관인 국무위원회 소속으로 옮겨갔다.



빨치산 총리, 전문 관료 총리, 실세 총리, 허세 총리

역대 총리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 전문 기술 관료(Technocrat) 출신이다. 14대에 걸쳐 12명이 총리를 지냈다. 강성산, 박봉주가 두 차례 총리직에 올랐다. 1대 김일성(내각 수상), 2대 김일, 3대 박성철로 항일 빨치산 1세대다. 이들은 북한 정권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총리라는 자리를 통해 정치적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정치적 지위에 더해서 총리라는 국가직을 맡은 경우이다. 4대 이후는 그 반대이다. 모두 전문 기술 관료 출신으로 정치적 지위는 낮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총리직에 오르고 그 자리에 맞는 정치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총리는 보통 당 정치국 정치위원급 대우를 받는다. 당내 서열이 높은 편이다. 일단 총리가 되면 일반적으로 정치위원에 임명되지만 드물게 당의 최고 지위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기도 한다. 4대 이종옥, 12대 최영림, 13대 박봉주가 그랬다. 가장 낮은 정치적 지위에 있었던 인물은 11대 김영일로 정치국 후보 위원에 머물렀다.


총리의 정치국 자리는 안정적이지 않다.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언제든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고, 총리 자리를 떠나면 정치국에서도 물러난다. 총리 해임 이후에는 한직에 이름만 걸치거나 당 중앙위원회 비서, 혹은 지방당 책임 비서를 맡는다. 4대 이종옥은 총리직에서 해임된 뒤 국가 부주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등 실권이 없는 상징적 자리로 물러났다. 5대, 8대를 지낸 강성산은 총리직을 떠난 뒤 당 중앙위원회 경제 담당 비서, 함경북도당 책임 비서를 지냈다. 6대 이근모는 함경북도당 책임비서, 7대 연형묵은 정치국 후보 위원, 자강도당 책임 비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연형묵은 다른 총리와 달리 해임 이후에도 요직을 차지한 드문 경우이다. 고난의 행군 때 ‘강계 정신’의 모범을 창출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9대 홍성남은 함경남도당 책임 비서를 지냈다. 10대 박봉주는 경제 실패 책임을 지고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됐다가 당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뒤 당 경공업부장을 거쳐 김정은 집권 2년 만인 2013년 다시 총리(13대)가 됐다. 박봉주는 2019년 4월 총리직을 떠난 뒤에도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당 정무국 부위원장(과거 당 비서국 비서)이 됐다. 처음 있는 일이다.


김재룡은 그 존재감에서 11대 김영일 총리의 범주에 가깝다. 김영일은 화폐개혁으로 북한 경제가 엉망이 되자 박봉주 후임으로 2007년 4월 총리가 됐다. 내각 육해운성에서만 일해 온 전문 관료 출신인 그는 역대 총리 가운데 총리 재직 때나 총리 재직 후나 남쪽에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총리 때 당내 지위도 역대 총리 가운데 최하위인 정치국 후보 위원에 머무르다 3년 만에 물러났다. 당 내 지위도 김재룡에 미치지 못한다. 김재룡은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당 정치국 위원이자 군사정책을 결정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다. 김재룡으로서는 벼락출세한 셈이다.



당 경제, 군 경제, 인민 경제로 3분할 된 북한 경제

김재룡은 김영일의 한계를 넘어 일정한 업적을 낼 수 있을까? 김정은은 내각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내각은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 사령부로서 경제 발전 목표와 전략을 과학적으로 현실성 있게, 전망성 있게 세우며 경제 사업 전반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지도 관리하기 위한 사업을 주동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조선중앙통신 2012/4/19).


김정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북한이 경제적 성과를 낼지 말지는 ‘경제 사업 전반을 통일적으로 장악한’ 김재룡의 역량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김재룡이 아무리 역량을 발휘한다 해도 그의 앞에는 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각이 경제 사업 전반을 통일적으로 장악할 수 없는, 제도와 관행이다. 내각은 사실 경제사령부가 아니다!


당은 최고 수준의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 기관이다. 그런 만큼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정책은 오직 국가 기관을 통해서만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돈 앞에서는 이 원칙이 무너진다. 당은 자체적으로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별도의 이권 사업을 한다. 당 여러 부서가 돈벌이를 하지만, 대표적인 조직이 당 38호실, 39호실이다. 38호실은 호텔・식당, 외화벌이 상점을 운영하고, 39호실은 광산, 송이버섯 채취를 통해 외화벌이를 한다.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이 측근 선물 및 연회 등 후계 체제 구축에 필요한 자금의 조달을 위해 ‘평양상사(대성총국 전신)’를 조직해 송이버섯 및 전복 채취, 금광 채굴 등을 한 것이 시초다(박영자 외 2018, 75-76). 2009년 5월 38호실을 39호실로 통합했다. 당은 이렇게 내각과는 독립적인 영역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일종의 궁정 경제(palace economy)2)라고 할 수 있다.


호위사령부, 인민무력성,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과 같은 군 및 보안 기관도 군수물자 생산, 인민무력부의 무기 및 유관물자 수출입, 군부대 자체 생산 및 거래 활동을 한다. 이 모든 것 역시 내각이 관할하는 경제 공간 밖에서 이루어진다. 군 경제는 1979년 후반 군수공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제2경제위원회를 신설한 것이 계기다. 제2경제위원회는 내각의 제2기계공업부에서 군수공업 관리 기능을 인수하면서 설립됐다(박영자 외 2018, 75-76). 이후 정무원(내각의 전신) 예산과는 별도의 독자적인 예산에 근거한 제2경제권이 형성됐다. 제2경제의 자금과 자원은 국가계획위원회의 계획에 따라 일부는 공식 예산 및 당으로 보내지만,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획득 및 조달한다(성채기 2003, 44).


당 경제와 군 경제는 1990년대 경제난,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 체계가 무너져 기관별로 자력갱생을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면서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상황을 조장한 당사자인 김정일은 1998년 “규정상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하게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당과 군이 자체로 운영하는 단위가 많은가”라고 짐짓 몰랐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한기범 2009, 270-271).


당과 군은 북한에서 권력 중의 권력을 가진 특권적 기관이다. 이 특권적 기관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기 권력을 동원하겠다면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특권 기관은 시장의 상품 유통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그 밑에는 큰 돈주들(북한의 자본가), 즉 본인이 사업 자금을 투자해 이 부서들의 외화 벌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부서의 보호막 아래 불법적으로 자기 개인 외화 벌이 사업을 병행하여 개인 재산을 증식하는 이들이 있다. 특권적 기관의 외화 벌이는 독재자에 의한 지대 할당과 재분배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시장은 수출입을 통한 이런 지대 실현을 매개해 주는 경제적 공간의 일부를 구성한다(최봉대 2011, 13).


경제 전문가 출신 탈북자는 군 경제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30%, 제2자연과학원 출신 기자는 민수와 군수 비율이 4대 6이라고 증언했다. 다른 탈북자는 당 경제가 10~20%, 군 경제가 30~40% 정도라고 했다(박영자 외 2018, 77). 남한의 한 연구자는 군 경제가 전체 경제의 30~60%일 것으로 추정했다(탁성한 2012, 3). 어쨌든 내각이 관할하는 인민 경제는 북한 경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경제는 이렇게 당경제, 군경제, 인민경제로 3분할되어 있다.


당원이자 중앙 국가기구의 고위 간부 출신 탈북자의 증언.


“특수 기관들은 외화 벌이해서 돈을 꽤 번다. 어느 정도 벌다 보니까 기관 내 예산을 맞추면서 돌아간다. 내각은 무역 회사가 그렇게 많아도 무역성을 포함해 돈을 전혀 못 번다. 그러니까 내각 국가기관의 내부 예산을 어떻게 충당하는가? 국가에서 돈을 안 주고, 외화 벌이 기지도 없고, 그러니까 달랑 몸을 보내서 벌기 쉬운 게 노동자 송출이다”(박영자 외 2018, 122).


생활 보장 수준에서도 당과 내각은 차이가 있다. 고난의 행군 때 중앙당은 생활 보장을 받았지만. 내각은 받지 못했다. 다른 중앙 국가기구 고위 간부 출신 탈북자의 증언.


“중앙당 간부들은 철저하게 이게 생활상 보장이 됩니다. 쌀로부터, 식량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식물에 이르기까지 일체. 고난의 행군 때도 중앙당이 부정행위를 하고 식량이 없어서는 안 되잖아요. 중앙당이 무너지면 안 되니깐 그것만은 철저하게 했죠. 내각은 자체로 식량도 조달하고 다 자기가 부식물도 구입하고, 내각에 공급이 된다 하게 되면, 상(장관), 부총리, 총리급만 되고 부상(차관)도 안 돼요”(박영자 외 2018, 122).



당·군 특권 경제 수술 나선 김정일, 그러나

경제난이 극심하던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은 경제가 세 쪽 난 상황이 경제난을 초래하는 구조적 원인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일대 경제개혁에 나섰다. 2000년 5월, 2001년 1월 중국을 연이어 방문했을 때 실리 사회주의 경제에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이후 김정일은 내각의 경제 부서 전문가와 학자로 ‘6.3 그루빠’를 구성, 경제정책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6.3 그루빠’의 제안은 특수 부문을 줄이고 내각이 경제 전반을 직접 통제하는 내각 권한 강화 조치가 골자다. 특수 부문이란 내각의 관할 범위를 벗어나 독자적인 경제 사업을 하는 당과 군의 권력 기관을 말한다.


김정일은 2001년 10월 3일 당과 내각 간부 연석회의에서 경제 개혁 원칙을 제시했다. 이듬해 7월 1일 당정은 가격과 생활비 현실화, 독립채산제, 분조관리제에 의한 협동 농장 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관리 개선 조치, 즉 ‘7.1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7.1조치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조급해진 김정일은 2003년 내각 화학공업상으로 있던 박봉주를 전격 총리로 기용했다.


“박봉주 총리한테 행정권, 인사권, 검열권을 다 주었다. 박봉주는 지금까지 사회주의 경제 관리에서 볼 수 없었던 권한을 다 받게 되었다. 국가검열위원회도 다 총리 손으로 만들어 놓았다”(박영자 외 2018, 109).


박봉주는 김정일의 신임을 배경으로 북한 경제의 고질병인 당 경제, 군 경제를 수술하기 시작했다. 3분할되어 있는 경제 영역을 내각의 통일적 장악 아래 두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과 군의 조직과 인력을 구조 조정해 당·군 경제 사업을 축소하고, 당과 군의 경제 사업을 내각으로 이관토록 했다. 당이 맡았던 남북 경협 사업도 내각으로 이전했다. 지방당의 놀고먹는 유급 당원을 축소하는 조치도 했다. 2004년 6월에는 ‘내각 상무조’를 가동해 가족 영농제 도입, 기업 경영 자율화, 당의 사회적 노력 동원 금지, 물자 교류 및 상품 도매 시장 토대의 유통 구조 구축, 상업은행과 무역은행 신설 등 파격적인 경제 개혁안을 추진했다. 실세 총리가 된 박봉주는 임무와 권한이 일치하지 않았던 내각 책임제를 실질에 맞게 개선해 나갔다(한기범 2009, 269).


<사진 설명> 박봉주(사진중앙). 박봉주는 김정일의 신임을 배경으로 북한 경제의 고질병인 당 경제, 군 경제 수술을 시도했다. 출처_중국망



내각에 경제 통제권 집중하려던 박봉주의 야망과 좌절

그러나 박봉주의 경제 개혁은 도전에 직면했다. 경제 전문가였던 고위 탈북자의 증언이다.


“… 그래서 박봉주가 확 뜨고, 결국은 오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까 당 조직 선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가 올라오는데 ‘뭐 사람들이 자본주의화된다, 돈밖에 모른다, 그간의 사상 사업 체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거다. 계속 이런 게 올라오니까 김정일도 불안해졌다. 이러다간 잘못되겠다 싶어 박남기를 (당)계획재정부장에 앉혀 놓고서리 ‘야, 네가 바로 잡아라’고 했다. 결국은 김정일이 해놓고 총대는 박남기에게 메라고 한 셈이다. 박남기가 예전의 조치로 되돌려 놓고 화폐개혁을 하니까 사람들이 박남기를 욕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박남기를 죽인 셈이다”(박영자 외 2018, 109).


김정일은 2005년 경제 주도권을 내각에서 당으로 이관하고 같은 해 7월 당 계획재정부를 신설해 박남기를 부장에 임명, 수습책을 맡겼다. 박봉주에게는 직무 정지가 내려졌다(한기범 2009, 292). 박남기 자신은 화폐개혁에 부정적이었지만, 당의 방침으로 추진했고, 화폐개혁이 대혼란을 일으키자 총살당했다. 총리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경제정책 실패를 공인하는 것이 되고, 그 책임이 당과 김정일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걸 피하기 위해 박남기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그의 죄목은 경제 실패가 아니라, 간첩 행위였다.


한 탈북자의 증언.


“당시 당 경제정책검열부, 당 농업부 등이 나왔다가 없어졌다, 왜 없앴나, 잘 안돼서 없앴다. ‘야, 왜 그걸 당에서 다 안고 있나, 넘기라.’ 일종의 책임 회피다. 사업은 안 되는데 다 안고 있으니 책임이 당 쪽으로 다 들어온다”(박영자 외 2018, 79).


김정일은 경제개혁 과정에 당과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막을 쳤다. 김정일은 경제개혁을 밀어줄 때는 화끈하게 밀어주었다. 물론 그럴 때조차 특권 기관의 이권 사업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다. 김정일은 결과적으로, 경제개혁과 특권 기관의 경제 사업권 보장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당과 군의 경제를 국가 경제로부터 분리하여 자신의 개인 소유처럼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특수 권력기관들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었다(황장엽 1999, 287-288).



다시 경제개혁에 나선 김정은

김정은은 아버지가 실패한 경제개혁의 길에 나섰다. 김정은은 김정일 장례식을 치룬 바로 그날, 2011년 12월 28일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우리 조국을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올려 세워 주시였습니다. 그런 것만큼 이제는 우리 조국을 경제 강국의 지위에 올려 세우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문제, 특히 먹는 문제만 풀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조선 상표가 붙은 쌀 마대의 쌀을 먹으면서 로동당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민들이 남조선 상표가 붙은 쌀 마대의 쌀을 먹으면서 로동당 만세를 부르게 할 것이 아니라, 농업 생산을 늘리고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여 우리가 생산한 쌀을 먹으면서 로동당 만세를 부르게 하여야 합니다. 인민들의 식량 문제만 풀면 장군님의 강성 국가 건설 구상을 얼마든지 빨리 실현할 수 있습니다”(박영자 외 2018, 88).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권력 승계 후 첫 공개 연설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조선중앙통신 2012/4/15).


2013년 3월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을 채택할 때도 “핵 억제력만 든든하면…마음 놓고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에 집중할 수”있다고 강조했다(노동신문 2013/4/1). 핵무기 개발이 한창일 때조차 핵 개발이 인민 생활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2016년 5월 7차 당 대회에서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채택할 때도 “인민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 부문 사이 균형을 보장하여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2018년 4월 핵 무력을 완성했다며 병진 노선의 성공을 선언한 뒤에는 ‘앞으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의 논리에 따르면 병진 노선도, 병진 노선 승리 후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새로운 전략 노선도 모두 인민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의 내각 책임제를 다시 꺼낸 김정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초 내각 중심의 경제관리 개혁을 위한 상무조(T/F)를 구성, 내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2012년 4월에는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를 강조했다. 북한 사정을 잘 모르는 남측 일부에서는 이 소식에 김정은이 이제는 의원 내각제까지 도입하는 것이냐는 우스개가 나오기도 했다.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는 내각이 경제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질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의 중추가 되어야 한다는, 내각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인민 생활 향상과 경제 강국 건설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하여서는 경제 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 가는 규률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는 경제 사업에 관련한 문제들을 철저히 내각과 합의하여 풀어 나가며 당의 경제정책 관철을 위한 내각의 결정, 지시를 어김없이 집행하여야 합니다. … 각급 당 위원회들은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를 강화하는 데 지장을 주는 현상들과 투쟁을 벌리며 내각과 각 행정 경제 기관들이 경제 사업의 담당자, 주인으로서 자기의 임무와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내세워 주고 적극 떠밀어 주어야 합니다”(조선중앙통신 2012/4/19).


김정은은 또 2018년 4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 회의 7기 3차 회의에서 “내각을 비롯한 경제 지도 기관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작전과 지휘를 치밀하게 짜고, 모든 부문을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선중앙통신 2018/4/21).


김정은이 인민 생활 개선을 위해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를 강조한 것은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이미 김정일이 1998년 9월 헌법 개정을 계기로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내각 책임제 자체도 1994년 내각의 전신인 정무원 체제 때 강조했던 정무원 책임제, 정무원 중심제의 계승이다. 정무원은 나라의 전반적 경제사업을 통일적으로 틀어쥐고 조직, 지휘하는 경제사령부로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 역시 1972년 내각을 중앙인민위원회와 정무원으로 분리할 때 도입된 것이다. 경제사령부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도 언급된 바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실패한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를 재활용해 경제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내각·총리의 위상을 높인 김정은

김정은은 우선 군 핵심 사업권 일부를 내각으로 이관했다. 이에 리영호 군총참모장이 불만을 나타냈지만 그를 숙청하면서까지 경제개혁을 밀어붙였다. 김정은은 이외 여러 방법으로 내각을 예우했다. 2019년 4월 헌법 개정 때 ‘국가는 내각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인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총리를 비롯한 내각 부총리, 상 및 위원장 등 모두 48명을 선출했을 때는 노동신문이 전례 없는 지면을 선보였다. 이들 모두의 프로필을 노동신문에 게재한 것이다. 파격적 예우는 또 있다. 총리의 ‘현지 료해’다. ‘현지 료해’는 현장의 사정이나 형편이 어떠한가 알아보는 것을 뜻한다. 최고 지도자가 아닌, 고위직의 현지 시찰과 이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김일성 유일 권력 체제가 구축된 1967년 이후 사라졌다. 수령제하에서 수령의 ‘현지 지도’가 아닌 것, 즉 수령이 아닌 자가 현장을 찾아 이것저것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공식 승계하기 전,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할 때인 2011년 2월 27일 최영림 총리가 희천 발전소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이를 ‘현지 료해’로 예우했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현지 방문할 때도 ‘현지 료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지만, 점차 총리의 현장 활동에 관해서만 ‘현지료해’라는 용어를 쓰는 것으로 정착됐다. 북한 언론은 김재룡 총리의 활동을 ‘현지 료해’라며 활발히 보도하고 있다.


<사진 설명> 북한 언론은 김재룡 총리의 활동을 ‘현지 료해’라며 활발히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현지 료해에 나선 김재룡 총리(사진 중앙) 출처_조선중앙통신


김정일이 경제 개혁의 방향은 물론 당과 군의 특권 경제도 축소와 복원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던 것과 달리 김정은은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민 생활 개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당의 전략 노선이라는 높은 차원의 당 공식 결정으로 채택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내각 인사의 당내 지위도 높였다. 내각 인사의 당 정치국 진출은 김정일 시대 총리 한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 김정은 시대에는 최소한 2명, 많으면 4명에 이르기도 했다. 북한의 여러 부문 대표로 구성되는 정치국에 특정 부문에서 4명이 진출한 것은 상당한 비중이다. 2016년 5월 7차 당 대회 때 박봉주 총리는 정치국 상무위원, 내각 부총리 출신인 오수용·곽범기·로두철은 정치국 위원으로, 임철웅 부총리가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 선출됐다. 보통 당료가 내각에 진출했다가 다시 당으로 오는 순환 인사는 많다. 그러나 이들은 온전히 내각에서 경력을 쌓고 당으로 진출한 경우이다(박영자 외 2018, 111).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김정은의 노선에 맞게 내각 인사를 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각 전문기술 관료들의 당 고위직 진출은 내각이 실질적으로 경제 지휘권을 행사하는 데 도움이 될까? 남측 일각에서는 내각이 당에 종속되는 경향이 심화될 것이라는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박영자 외 2018, 111). 그러나 이런 비판은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내각이 당의 영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숙명이다. 북한이, 결정은 당이 하고 국가는 집행만 하는 당-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 내각 인사가 정치국에 많이 진출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내각은 당의 지도와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에 내각이 당에 더욱 종속된다는, 변함없는 속성을 주목하기보다는 김정은이 전문 관료 출신을 꽤 챙긴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내각 관료 인사의 정치국 진출이 증가한다는 것은 내각이 당에 종속된다는 당연한 현상뿐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내각의 입장을 당내에 더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됐다는 것도 말해 준다.



실질적 경제정책 권한 없는 총리의 한계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내각의 위상과 역할을 제고하고 경제문제에 관한 권한을 위임한다면, 내각의 자율성도 커지고 경제문제도 좀 더 효율적으로, 즉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풀려 나갔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도 김재룡은 물론 전직인 박봉주조차 경제문제에 전적인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다. 실제 내각의 자율성도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내각 관료의 당내 지위 격상, 총리 예우, 내각 띄우기,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는 전부 사기였는가?


이 의문에 답하려면 먼저 북한의 당-국가 체제를 이해해야 한다. 당-국가 체제란, 모든 결정은 당이 내리고, 국가는 이를 집행하는 체제, 국가의 노선과 정책을 전적으로 당이 결정하는 당 우위의 체제를 의미한다. 이는 북한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규정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공화국’의 모든 국가기관은 당의 결정을 집행할 의무만 진다. 자율적인 정책 결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책 집행 과정도 내각에 의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내각 안팎 당 조직의 통제 아래 집행된다. 내각은 내각 당 위원회에, 내각 산하 성(혹은 위원회)은 각 성(혹은 위원회) 당 위원회에 보고하고 당 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 각 성 당 위원회의 당 정치 사업은 당 조직 지도부의 지도를, 각 성의 사업은 중앙당의 해당 경제 부서의 지도를 각각 받는다. 이 때문에 내각 상(장관)이라도 자신이 속한 위원회와 성의 당 조직 말단 간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김영남도 외무상일 때 외무성 당 세포 비서에게 굽실거렸다고 한다(한기범 2009, 267). 각 성 산하 기업소·공장도 기업소 당 위원회, 공장 당 위원회의 지배 아래 있다.


그런데 당이 지도할 때는 정치사상 교육 및 선전 활동에 의한 정치적 지도, 당의 노선·정책을 충실히 따르도록 하는 정치적 지도, 정책적 지도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행정 경제 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란 당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행정 경제 기관들의 활동을 당이 직접 장악·지도한다는 것으로서 당이 당 정책을 틀어쥐고 정치 사업을 강화하여 당원들과 당 조직들을 움직이며 행정 경제 기관들이 당의 경제정책을 정확히 관철하도록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도와준다는 것을 말한다”(한용선 1977, 16-17).


당은 당 조직을 통해 사업을 해야지 국가 행정 기관의 일을 직접 맡아 하는 행위, 즉 행정 대행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행정 경제 사업은 내각으로 대표되는 행정 경제 부문이 지휘관, 사령부로서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일로서, 당은 이를 돕는 역할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정 일치와 당정 분리 사이의 딜레마

하지만 당-국가 체제는 모든 국가행정 기관에 당 위원회가 조직되어 있고, 당 위원회는 해당 기관의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일 뿐 아니라, 해당 기관의 실적을 정치적으로 최종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이 때문에 당은 국가 행정에 시시콜콜 간섭하지는 않으면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다. 만약 당 조직이 행정 대행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지만, 실적이 나쁠 경우 해당 기관의 당 조직이 당 사업을 제대로 못한 결과라며 책임 추궁을 당한다. 따라서 다음부터는 당 조직이 행정 대행을 해서라도 실적을 올리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 때문에 행정 대행이 만연해진다. 그러면 다시 행정 대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다. 국가 행정 기관 내 당 조직의 존재는 당정 간 경계의 불분명성, 행정 경제 간부와 당 간부 간 기능의 중복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을 제공한다(이대근 2007, 198).


김정일 시대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로 당 조직을 축소하고 유급 당원을 줄여 국가행정 사업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도 이 같은 조직 논리의 자기모순 때문이다. 북한의 역사는 곧 당 개입 축소와 확대를 반복해 온 시간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당 비서국 내 전문 부서 가운데 경제 부서로 계획재정부, 경제계획부, 농업부, 경공업부, 건설운수부, 기계공업부, 중공업부, 군수공업부 등이 있었다. 당 경제 부서가 많은 만큼 내각의 경제 사업에 개입할 여지도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당 간섭을 줄이고 내각의 경제 지휘권을 존중해 준다며 경제정책검열부와 농업정책 검열부 2개 부서로 통폐합했다.


경제 전문가 출신 고위 탈북자의 증언이다.


“김정일은 2002년 이런 우리 경제식으로는 안 되겠다. 뭔가 확 뜯어 고쳐야겠다고 해가지고 7.1조치를 하고 경희 때문에 당 경공업부 하나 남겨 두고 중앙당 경제 부서들을 다 없애 버렸다”(박영자 2018, 109).


그러나 2005년 당 계획재정부를 신설하고, 2018년 당 경제부, 경공업부, 농업부, 당 재정경리부를 다시 부활했다. 당 조직에 의한 국가 행정기관의 지도와 통제 원칙이 존재하는 한 경제문제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대근 2007, 200-201).


한 탈북자의 증언.


“김정일 시대 말기에 말하자면, 농사가 잘 안 되고 인민들의 영양부족 상태는 심각하고 하니까 김정일이 ‘군대에서 콩 농사를 많이 하라, 사회적으로도 콩 농사 많이 하라’고 지시했다. 그걸 하자고 보니까 내각이 못해요. 그래서 ‘야, 너네 당 조직 지도부가 책임지고 해라’고 했다. 그래서 콩 농사를 전임으로 보는 24과를 조직 지도부에 신설했다”(박영자 2018, 79).


전당의 조직을 검열하고 인사 통제하는 실질적 최고 권력 기관도 콩 농사를 짓는 일이 가능한 게 바로 북한이다. 어떤 경우에는 돈이 모이는 사업에 당 기구를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설 사업은 당 행정부의 기능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돈이 집중되자 장성택이 부장일 때인 당 행정부는 국토과와 건설과를 설치했다(박영자 2018, 79-80).


2003년 12월 박봉주 총리가 김정일의 신임을 받을 때의 일이다. 박봉주는 신일남 수도건설위원장에게 평양 현대화 사업 자재 우선 보장을 지시했다. 그러자 그는 장성택 당 조직 지도부 제1부부장의 행정 담당 승인이 필요하다며 자기 직속상관의 지시를 거부했다(한기범 2009, 292).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시장화 조치도 적극 취했지만, 북한 경제의 구조적 제약은 극복하지 못했다. 김정은 집권 후 많은 국영기업이 시장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생존하고 있다. 국가가 생산을 위한 물자를 충분히 공급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시장을 통해 물자를 조달하고 이렇게 조달한 물자로 시장 수요가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가격으로 판매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기업 운영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여전히 발전소나 제철소 등 핵심적인 기업은 계획에 의해 움직이지만 이미 많은 국영기업에서 계획은 형식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이석기 2018, 57).



시장 공인하고도 자력갱생 고수하는 모순

북한은 이제 시장을 공식 인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계획화 체계 내에 이식했다. 기업이 시장을 토대로 ‘기업소 지표’(기업소별로 할당한 과제)를 수행할 것을 허용한다거나 국가가 물자를 공급해 주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조달한 물자로 ‘중앙 지표’(국가계획위원회가 일률적으로 할당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수용한다. 계획 수행 수단으로서 시장을 공식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김정은 시대에 마침내 시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계획화 시스템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시장과 계획은 한 몸이 되었다(이석기 2018, 58).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도 당·군의 특권 기관에 소속되거나 관련된 기업에는 이런 시장화 조치가 해당되지 않는다. 내각 소속 기업 중에서도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핵심 기업은 기업소 지표의 도입이나 가격 책정 방식의 변화 등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기업이나 농장 등에 제도적으로 부여하기로 한 자율성과 권한이 실제로 제대로 지켜지는지도 의문이다(이석기 2018, 63-65).


북한은 1960년대부터 내각이 경제를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시대 결국 후퇴했지만, 한동안 내각 중심의 경제 운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했다. 김정은도 집권 7년 동안 나름의 노력을 했다. 박봉주를 총리로 재기용, 힘을 실어 주었다. 박봉주는 당에서 김정은·최룡해·김영남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기구에서는 국가주권의 최고 기관인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고,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군사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당 기구인 당중앙군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그렇게 6년간 장수도 했다. 2019년 헌법 개정으로 내각 권한도 강화했다.


그러나 그것이 김재룡 내각의 한계를 가릴 수는 없다. 내각의 형식적 권한과 총리 예우로는 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당정 분리를 금기시하는 당-국가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최고 지도자의 신임을 받으며 두 번의 총리를 지낸 박봉주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한 탈북자의 증언.


“박봉주가 다시 총리가 되었지만 인사권이나 검열권 등 실권은 주지 않았다. 현지 료해를 하게 하고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려 줬지만, 예전처럼 당 경제 부서를 없애고 인사권, 검열권을 줘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내각 총리가 아예 힘을 쓸 수가 없다. 먼저 번 여명거리 준공식 할 때 박봉주가 김정은한테 노는 거 보세요. 저 사람, 정말 대가 있고 괜찮았는데 그날 보니까 완전히 김정은한테 어쩔 줄 몰라 막 달려가고, 야, 박봉주도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봉주에게 현지 료해라는 걸 준 것은 총리가 뭘 알아서 사업 조직하려면 힘이 없는데 그렇다고 예전처럼 인사권이나 검열권을 줄 수는 없고, TV에 나오는 걸로 그 사람의 위상을 높여 줘서 말들 좀 듣게 해준 거다”(박영자 외 2018, 109).


박봉주가 이 정도였다면 김재룡은 말할 것도 없다. 총리로 임명된 지 반 년 된 김재룡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채 대북 제재는 지속되고, 경제는 세 쪽으로 나뉘고, 당이 내각의 안과 밖에서 내각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김재룡의 손을 떠난 문제다. 게다가 김정은의 경제 건설 대원칙은 확고하다. 자력갱생. 그래도 김재룡은 오늘도 열심히 현지 료해를 다닌다. <끝>


주석

1) 극심한 경제난의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믿고 자기 단위의 살림살이를 자체로 꾸려 나가는 자력갱생과 간고 분투의 정신을 말한다.

2) 가부장적 통치자가 부를 중앙집권적 통제 아래 두거나 사유화한 채 자의적으로 배분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참고문헌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주체 100(2011)년 12월 2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 게 하신 말씀.” 박영자·이교덕·한기범·윤철기 공저. 2018.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국가 기구와 국가성』. 통일연구원, KINU 연구총서 18-22에서 재인용.

● 박영자·이교덕·한기범·윤철기 공저. 2018.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국가기구와 국가성』. 통일연구 원, KINU 연구총서 18-22.

● “김일성 대원수님 탄생 100돐 경축 열병식에서 하신 김정은 동지의 연설.” 『조선중앙통신』(2012/4/15).

●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우리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미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 『조선중앙통신』(2012/4/19).

● 『노동신문』(2013/4/1).

● 『조선중앙통신』( 2012/4/21).

● 성채기. 2003.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 노력』. 한국국방연구원.

● 이대근. 2007. “조선로동당의 조직체계,” 『북한의 당·국가기구·군대』. 한울아카데미.

● 이석기. 2018.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의 변화.” 창비.

● 최봉대. 2011. “북한의 시장 활성화와 시장세력 형성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나.” 『한반도 포커 스』 제14호.

● 탁성한. 2012. “북한 군수산업의 능력과 전망.” 북한경제연구협의회 발표 자료.

● 한용선. 1977.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정치적 지도는 당적 령도의 기본 요구.” 『근로자』 제7 호.

● 황장엽. 1999.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한울.


이대근 ㅣ경향신문 논설고문

1984년 경향신문사에 들어간 뒤 정치부 기자, 국제부장, 정치 국제 에디터, 논설위원, 편집국장, 논설 주간을 거쳐 현재 논설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국내 정치, 외교 안보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경향신문에 <이대근 칼럼>을 쓴다. 200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 선군 정치를 주제로 한 “조선 인민군의 정치적 역할과 한계”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대학원 대학교 겸임 교수. 저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 이대근 기자의 정치 읽기(2009), 『북한 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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